그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인상파의 대표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너무도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이나 <해바라기> 외에도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사랑하지만 그건 그가 이미 세상을 뜬 이후의 일이고, 생전에는 세상 속에 온전히 녹아들지 못했던 비운의 화가지요.
미치광이로까지 여겨지던 이 화가가 광적으로 사랑했던 커피가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지독히도 가난했던 반 고흐가 아마도 유일하게 즐기던 사치였지 않았을까요. 바로 예멘 모카 마타리랍니다.
그의 골수팬들은 “반 고흐와 소통하는 길은 마타리를 마시는 것 밖에 없다”고 말할 정도로 그가 사랑한 커피로 유명합니다.
예멘 모카 마타리(Yemen Mocha Mattari)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과 하와이안 코나와 더불어 세계 3대 프리미엄 커피로도 알려져 있죠.
참고로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사랑하는 커피랍니다. 여왕의 커피,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반 고흐의 커피, 예멘 모카 마타리.... 어쩐지 메이저와 마이너 감성으로 나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ㅋㅋ
우린 또 마이너 감성 사랑하잖아요ㅋㅋ. 그래서 반 고흐의 예술적 감성을 조금이라도 공유하고픈 바람에 커피 전문 온라인샵에서 200그램 2만 2,000원에 모카 마타리를 구입했습니다. (사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높은 등급은 거의 루왁만큼이나 고가라 쉽게 사먹기도 힘들긴 하죠 T.T )
200그램 2만 2,000원이면 일반적으로 콜롬비아나 코스타리카 산보다는 조금 비싸고, 하와이안 코나보다는 조금 싼 수준이네요.
예멘이란 국가, 근래엔 예멘사태를 통해 자주 국제뉴스에 언급되고 있지요. 중동의 화약고라 불리며 전쟁의 화염 속에 아픔을 겪고 있는 곳이지만, 사실 예멘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커피가 경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지난번에 에티오피아 모카 하라, 예가체프 커피를 소개해드리면서 커피열매가 처음 발견된 곳이 에티오피아라고 말씀드렸는데 기억 나시나요? 커피의 엄마가 에티오피아라면, 예멘은 커피의 아빠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어쨌든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된 것은 6세기경부터 예멘에서 본격적으로 커피가 경작되고 수확되어 모카항을 통해서 각국으로 전해진 덕분입니다.
이 때문에 ‘모카(Mocha)’라는 단어가 커피의 대명사로 쓰이게 된 것이지요. 예멘에서 재배된 커피는 특히 다크 초콜릿의 맛이 강한 편이라 그와 비슷한 맛이 나는 커피(에티오피아 모카 하라 등)에는 모카라는 말이 붙기도 하고요.
또 초콜릿을 의미하는 단어로도 사용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카페에서 마시는 베리에이션 커피 중 에스프레소에 초콜릿 시럽을 듬뿍 넣고 스팀우유를 부어 달달하게 마시는 것을 카페모카라고 부르기도 하죠.
17~18기 초에는 서인도제도,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된 커피(만델링)도 모카라 부르는데 예멘에서 종자를 가져간 것으로 재배해 맛과 향이 유사하여, 서인도제도에서 생산된 커피도 모카라 부르기도 한다고요.
끝으로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서 사용하는 가정용 에스프레소 추출기구(요 아이↑)도 모카 포트(Mocha Pot)라고 부르는 등 ‘예멘 모카 = 커피’ 라고 동격화 될 정도로 이미 우리 생활에 뿌리내려져 있지요. 감자튀김을 보통 프렌치프라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아라비아 반도의 남서에 위치한 예멘은 ‘초록의 아라비아’라고 부를 만큼 중동 아랍권에서 초록이 풍부하며 비도 풍족한 나라입니다. 커피를 뜻하는 오랜 닉네임이 된 모카라는 작은 항구도시는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다네요.
예멘 커피 중에서도 베니마타르 지역에서 생산하는 최고급 품종의 커피만을 가리켜 ‘모카 마타리’라 부른답니다. 묵직한 바디감, 새콤한 맛과 쓴맛의 환상적인 조화, 진한 다크 초콜릿 향이 매력이라는 설명.
해발 1,000m~1,300m 고지대에서 재배되고 수확은 10월~12월경이고 전통적인 건식법(DryMethod)으로 가공되는데. 보통 풀 시티(Full City)로 로스팅(Roasting)하면 과일 향이 풍부하고 신맛이 강하며 적절한 쓴맛과 단맛을 갖는다고.... 물론 제가 맛봤을 때는 그 소개가 100% 일치하지는 않았지만요.^^
생두의 모양이 작고 못생기고 균일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반 고흐가 그래서 더 사랑한 건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ㅋㅋ (반 고흐 외모 비하 발언?)
이 예멘커피는 가공방법도 독특하답니다. 에티오피아와 같이 가장 전통적인 방법으로 커피가 재배되고 가공이 되는데요, 일단 자연건조법인 것은 물론이고, 커피 체리를 일일이 손으로 따서 말린 후, 맷돌을 이용해 체리 껍질을 벗겨 낸다고 합니다. 요즘엔 공장에서 기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죠. 그래서 다른 생두에 비해 크기도 들쭉날쭉한데다가 결점두도 많은 편이고 미숙콩도 많아, 핸드픽(손으로 일일히 골라내는 작업)을 꼭 거치시는게 좋다고 하네요.
아까도 언급했듯이 예맨 모카커피 등급 중 최고가 마타리 그 다음이 샤르카, 사나니 순입니다.
재밌는 사실은 예멘에는 커피숍이 거의 없다고 하네요. 예멘 사람들은 주로 차를 마신다고 ㅋㅋ. 파나마 사람들이 게이샤를 맛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자, 이제 커피를 개봉해볼까요? 봉지에 지퍼가 달려있어서 필요한 만큼 꺼내고 다시 밀봉할 수 있게 돼있어 보관이 편리하게 해줬네요.
핸드드립으로 내려 볼까요. 초콜릿 맛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평소보다 조금 곱게 갈았습니다.
예맨 모카 마타리는 반 고흐의 감성을 닮은 브라운 컬러의 잔이 어울릴 듯 하죠. (커피잔도 코디가 필요한 법)
소개된 대로 초콜릿 맛이 먼저 진하게 풍겨옵니다. 마치 초콜릿 티나 핫초코를 마시는 듯한 느낌?
반면에 첫 맛의 산미는 비교적 약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 맛으로 새콤함이 스치고 지나가는 정도, 바디감은 묵직한 편이고....얼마 전 시음한 파마나 게이샤와는 극과 극을 달리는 맛과 향...이렇게 달콤 쌉싸래한 맛을 반 고흐는 왜 그토록 좋아했을까요?
초콜릿과 함께하면 그 맛이 극대화 될 듯합니다.
울 큰 조카님 제공 생초콜릿^^ 아이스크림과 커피의 콜라보(아포가또)도 좋지만 쪼꼬레또와 커피도 환상의 케미입니다. 초콜릿을 입에 넣은 채 커피 한 모금 해보시면 그 느낌이 뭔지 아실 겁니다.
파나마 게이샤가 맑고 화창한 날에 어울리는 커피라면 이 예멘 모카 마타리는 흐리고 꾸물꾸물한 날에 더 잘 어울릴 듯합니다. 그냥 드립해서 마셔도 좋지만 초콜레티한 편이니까 라떼나 카푸치노로 마셔도 매우 좋을 듯.
라떼도 만들어볼까요? 얼마전 장만한 모카포트를 이용해 에스프레소를 추출해봅니다. 모카포트 사용기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설명드리기로 하고요.
카페라떼나 카푸치노는 베이스가 되는 에스프레소도 중요하지만 스팀밀크가 매우 중요합니다. 우유거품의 입자가 얼마나 고우냐에 따라 입술에 닿는 느낌 또한 매우 차이가 나지요. 일명 벨벳스팀이라고 하는데 바리스타의 숙련도에 달려 있다는.....
비록 시공간은 다르지만 그림 <아를의 포럼 광장에 있는 밤의 카페 테라스>에서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모카 마타리 한 잔을 앞에 두고 사색에 잠겨있는 반 고흐를 상상해 봅니다.(그 카페는 지금도 그대로 있다네요, 언제 가볼 수 있을 지...) 아마도 프랑스 아를에서 오매불망 고갱을 향한 기다림 속에 그 우울함을 달래주는 유일한 친구가 모카 마타리 커피였나 봅니다.
이상으로 곧 시작되는 장마와도 참 잘 어울리는
‘딥한’ 감성의 커피, 예멘 모카 마타리 를 만난 주바리의 시음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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