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휘날리며~’
해마다 이맘때면 좀비처럼 스멀스멀 들려오던 그 노래를 흥얼거릴 기분조차 들지 않는 2020년의 봄이네요. 집에서 일하는 시간이 늘면서 ‘벚꽃좀비’가 아니라 ‘재택좀비’가 될 것 같은 현실(그나마 ‘땡플릭스’ 킹덤 좀비 떼의 피처링이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다는ㅋㅋ). 대한민국 모두의 일상이 무너진 요즘 ‘코로나블루’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우울감에 다들 힘드실 텐데요. 하지만 투병 중인 환자들이나 일선에서 고생하시는 의료진·자원봉사자분들 앞에선 이런 마음은, 단체격리 중 제공된 도시락이 맛없다고 SNS 글을 올렸던 한 우한 교민의 철없음과 다를 바 없는 투정일 뿐이겠죠.
코로나19로 집에도 못 가고 고생하시는 분들의 인터뷰를 본 적 있는데 ‘이 사태가 끝나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보니 예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답한 분이 많더라고요. 또 한번 우리의 소소한 일상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되돌아보면서, 이 좋은 계절이 끝나기 전에 봄바람 맞으며 커피향기 즐길 수 있는 한옥 카페를 소개해 드릴게요.
■ 나무사이로
종로구 내자동의 소담스러운 카페 ‘나무사이로’는 광화문 빌딩숲 사이에서 유일하게 피톤치드 뿜뿜해 주는 듯한 쉼표 같은 공간이에요.
아담한 한옥을 개조해 카페를 꾸몄는데 미음자 구조의 중앙 마당에서는 바람과 햇볕을 오롯이 느끼며 커피나 차를 즐길 수 있죠. 밀폐된 공간보다는 야외가 바이러스 감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니 더 좋겠죠.
카페 내부 인테리어도 화려함보다는 고즈넉하고 편안한 느낌이라 취향 저격.
요렇게 한옥 대문을 배경으로 맘에 드는 컷도 얻을 수 있었죠.
공간만 매력 있는 건 아니에요. 퀄리티 높은 스페셜티 커피로 마니아들에게 인정받고 있죠. ‘스페셜티 커피’란 미국 스페셜티커피협회(SCAA) 평가 기준으로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을 받은 고품질 커피를 말해요(그만큼 가격도 스페셜한 편ㅋㅋ). ‘나무사이로’는 원두도 직접 볶는 로스터리 카페이고요.
커피와 함께 곁들일 수 있는 티라미수도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하답니다. 에스프레소는 톡 쏘는 산미가 특히 인상적이고 핸드드립 커피는 좋아하는 향미를 고르시면 되는데 6000~9000원의 가격대.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원두의 향기를 맡으러 꼭 가보세요.
■ 블루보틀 한옥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해 ‘커피계의 애플’이라 불리며 일본에 이에 지난해 우리나라에도 진출한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은 성수점 오픈 당시 4~6시간의 대기줄로도 그 열풍을 입증했는데요. 현재는 역삼점·압구정점·한남점군데로 확장됐어요.
삼청동 큰 길 안쪽의 한옥을 모던하게 개조해 프라이빗에 가까운 커피공간으로 꾸며놓았더라고요.
그중 삼청점에는 예약제로만 운영돼 프라이빗하게 커피 & 디저트 코스를 즐길 수 있는 한옥카페가 마련돼 있습니다.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만 시간대별로 예약이 가능한데 초기엔 수십 차례 실패하기 일쑤였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된 이후로는 예약 성공 확률도 높더라고요. 디긋자 모양의 한옥에 2시간 간격으로 3팀 정도만 받기 때문에 타인과의 접촉에 크게 불안하지 않고 커피타임을 보낼 수 있죠. 머무는 시간도 1시간30분으로 제한돼 있고요.
담벼락에 음각으로 새겨놓은 블루보틀 로고도 참 개성 만점이에요.
크림 뷔렐레는 테이블에서 직접 제조해주죠.
음료는 깊은 풍미를 느낄수 있는 융드립 커피, 놀라 크림 브륄레, 솔 라임 피즈 3종류와 재스민 케이크, 밀푀유 쇼콜라, 기모브 피스타슈라는 마시멜로 케이크 3가지를 궁합에 맞게 짝지어 맛보게 됩니다. 수제 초콜릿 세트도 따로 준비돼 있으니 취향껏 즐기시고요. 전문 바리스타들이 직접 음료와 디저트류를 제조하는 과정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고, 섬세하고 전문적인 메뉴 설명이 흥미로운 경험을 선사할 겁니다.
■프릳츠
국가대표 바리스타이자 ‘식객’ 허영만 화백의 커피 만화에도 등장하는 박근하 바리스타와 원두 바이어 김병기, 베이커리 ‘오븐과 주전자’ 출신 허민수 피티셰가 의기투합해 공동 운영하는 커피&베이커리 카페 ‘프릳츠’는 마포역 가든호텔 옆과 양재동에 위치해 있어요.
바리스타 2급 자격증 딴 뇨자, ‘주 바리스타’의 이름을 걸고 보증할 수 있는, 요즘 말로 ‘찐 커피 맛집’이랍니다. 저처럼 커피 좋아하는 빵순이라면 이 카페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걸요.
하지만 한옥의 멋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안국역 원서동 지점으로 가시길 강추해요. 고(故) 김수근 건축가의 공간 사옥이었던 아라리오뮤지엄의 1층과 한옥을 매장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날씨가 좋을 땐 한옥 내부보다는 석탑을 가운데에 둔 널찍한 마당이 좋은데, 봄바람에 머리카락 나부끼며 커피 한 모금 마시면 도심 속 나만의 작은 궁궐에 와 있는 착각을 일으키죠.
한옥 안쪽은 테이블과 의자만 없으면 리얼 옛날 한옥 느낌 그대로네요. 좌식이 더 어울릴 듯 하지만 발 저릴 것 같아 패쓰~
주변 건물의 조명이 들어오는 밤에도 멋진 뷰를 자랑하니 다른 시간대로 방문해 보시길 추천.
깔끔하고 뒷맛이 좋은 커피는 애호가들의 호평을 받고 있고, 라테나 카푸치노 종류도 짙은 풍미가 살아 있어요. 밀크식빵, 크루아상, 크림크루 등 베이커리도 맛있기로 소문 났답니다. 빵이 더 중요하신 분들은 우너서점 말고 도화점으로 방문하시길 추천해요. 빵 나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미리 검색해 보고 가시는 것도 꿀팁.
향긋한 커피 맛에 반하고, 그윽한 한옥 뷰에 힐링받는 그곳에서 마스크 벗고 좋은 사람들과 담소를 나눌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을 빨리 되찾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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