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가 제철이네요. 식탁 위에서도 그렇지만 스크린에서도 그렇지요. 영화 ‘미나리’는 미국 이민자 2세대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작품인데요.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포함해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 릴레이를 이어가고 있고, 특히 4월26일(한국시간) 개최되는 미국 아카데미영화제에서도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어 또 한번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올릴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어요.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알고 계실텐데, 실제로 어린 시절 감독의 할머니가 가져와 씨를 뿌려 키웠다는 미나리는 어디에서나 쉽게 뿌리를 내리고 잘 자란다는 점에서 한국인 이민자를 표현하는 소재이자 타이틀로 사용된 거랍니다. 음식의 주연은 아니지만 궁합이 잘 맞는 재료를 만나 향으로 그 맛을 완성시키는 미나리…. 그래서 유력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인 윤여정과도 꼭 닮은 듯해요.
동의보감에 따르면 미나리는 3~4월이 제철인 건강채소로 갈증을 풀어주고 머리를 맑게 해주며, 독소 배출에도 좋고 황달·변비와 숙취 해소에도 효과적이라네요. 영화 ‘미나리’의 수상을 기원할 겸 미나리가 들어간 음식을 맛보며 윤여정 배우의 대사를 빌려 외쳐봅니다. ‘원더풀~미나리, 원더풀~!’
■ 제주도복집
복맑은탕(우리가 흔히 복지리라고 부르는)에서 빠지면 섭섭한 채소가 바로 미나리죠. 서울 광화문에서 복맑은탕 잘하기로 이름난 ‘제주도복집’으로 가봅니다.
복어는 알코올을 분해하는 성분이 들어 있어 숙취 해소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생선인데요. 아스파라긴산이 있는 콩나물과 피를 맑게 해주는 미나리를 함께 곁들여 먹으니 두말할 나위가 없는 해장 메뉴. 미나리탕으로 착각될 만큼 듬뿍 얹어져서 나오는 복맑은탕이 끓어오르면 미나리와 버섯 등 야채부터 건져 새콤한 간장소스에 살짝 찍어 먹으면 되는데, 향긋한 그 내음에 봄이 입 안 가득 들어온 느낌이더라고요.
참복을 사용하기에 복어 살도 퍽퍽함이 전혀 없이 부드럽게 식도를 통과합니다. 여럿이 방문할 땐 복튀김이나 복불고기를 곁들여 먹기를 추천. 탕을 거의 비우고 난 다음에는 남은 국물과 잘게 썬 미나리 등을 넣어 볶음밥을 만들어 주는데, 담백하고 고소한 그 맛이 일품입니다.
■ 오첨지
미나리가 오징어와 만나면 어떨까요? 관악구 신림동 순대골목에 위치한 ‘오첨지’는 30여년 된 노포인데, 이름에서 느껴지듯 오징어 불고기 전문점이죠.
메뉴도 오징어·오삼·오낙·낙지·낙삼불고기뿐인데 모두 1만1000원이라는 착한 가격에 맛볼 수 있어요. 적당히 칼칼한 양념에 버무려진 오징어와 미나리를 식탁 위 가스레인지에서 바로 볶아 맛보면 향긋함과 아삭한 식감이 이건 마치 오징어가 미나리를 거드는 느낌? 오징어도 탱탱한 것이 물이 좋다는 것이 느껴져서 ‘엄지 척’이 저절로 나옵니다.
미나리는 추가도 가능해요. 공깃밥에 미나리, 김가루, 참기름을 넣고 볶는 볶음밥도 안 먹고 가면 섭섭하고요. 맛도 좋고 가성비도 좋은 ‘오첨지’, 매장의 청결도가 살짝 부족한 점만 개선된다면 더 좋겠어요.
■잠수교집
미나리와 삼겹살의 조합도 신선합니다. 용산구 보광동에서 냉동삼겹살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한 ‘잠수교집’은 저녁 피크 시간엔 요즘도 긴 대기를 세우는 스웨그를 자랑하죠. 이곳 본점 외에도 해방촌 2호점과 성수, 성북동, 송파, 문래, 강남까지 영역을 확장 중이랍니다.
제주산의 질 좋은 돼지고기를 급랭해 기계로 얇게 썬 냉삼을 1인분(160g)에 1만3000원으로 제공하는데 빛깔부터 핑크핑크해 신선함이 느껴지죠. 고기도 고기지만 야채, 김치, 백김치, 무말랭이, 파채, 계란말이, 계란노른자 소스, 쌈장, 새우젓, 기름장 등등 세기도 힘든 곁들임 음식이 커다란 시골 쟁반에 푸짐하게 플레이팅돼 있어 눈을 먼저 사로잡더라고요.
거기에 미나리(3000원)를 추가해서 먹는 게 화룡점정. 미나리+삼겹살은 요즘 배우신 분들이라면 즐겨 먹는 조합이죠. 불판에서 함께 구운 미나리를 칙칙 앞뒤로 재빨리 구운 삼겹살로 동그랗게 싸서 입에 쏙 넣으면 궁합이 아주 딱이에요.
하지만 곁들여 먹을 재료와 소스가 많다 보니 매번 다른 조합으로 맛보다 보면 끊임없이 계속 고기를 흡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정신을 차리면 이미 때는 늦었다는^^.
■밀과 보리
미나리는 전으로 부쳐 먹어도 아주 맛있는데요. 종로구 재동 ‘밀과 보리’는 ‘식객’의 허영만 화백이 진행하는 ‘백반기행’에 소개돼 최근 더 화제가 된 곳이에요.
계절 메뉴인 미나리전은 밀가루반죽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듬뿍 넣은 미나리와 새우를 잘게 썰어서 부쳐내는데, 그 향기가 입과 코를 아주 행복하게 하네요. 튀긴 듯한 식감의 전을 선호하는 개인적인 취향 탓에 조금만 더 바삭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아마도 밀가루를 최소화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것으로…. 겉바속촉의 감자전도 평이 좋더라고요.
점심 메뉴로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강된장을 넣어 비벼 먹는 곤드레밥이고요. 저녁 메뉴로는 닭볶음탕과 홍어전 등이 막걸리를 부르는 안주랍니다. 메뉴판에 ‘우리 가게는 싱겁습니다’라는 사장님의 메시지가 적혀 있지만 제 입맛에는 전혀 싱겁지 않고 딱 먹기 좋을 만큼 간간하더라고요.
반찬 하나하나 맛깔나서도 좋지만 전체적으로 건강한 맛이 느껴져서 자주 방문하고픈 곳이네요. 허영만 화백이 그려놓은 벽의 그림을 보는 재미는 덤. 매장이 다소 협소하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점이 조금 불편하네요.
지금 미나리 땡기시는 분은 공감 하트 하나 꾸욱 하고 가실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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