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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점심

울긋불긋 숲길 끝에는 쯔왑쯔왑 맛길

거, 죽기 딱 좋은 날씨… 아니, 이건 NGㅋㅋㅋ. 거, 놀러 가기 딱 좋은 날씨네. 요즘 주변에서 심심찮게 이런 말 많이 듣고 있지 않으신가요. 하루하루 잉크 한 방울씩 추가된 듯 농도가 짙어져 가는 파란 가을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게 인지상정입니다. 특히 이번 주말부터 단풍이 절정인 곳이 많아서 마음이 일렁일렁하는 분들 많으실 텐데요. 하지만 그놈의 코로나19 때문에 사람이 몰리는 곳은 꺼려지기도 하고 가급적 피하는 게 바람직하죠. 그래도 이 짧은 가을이 순삭되기 전에 동네 근처에서라도 낙엽냄새·단풍색깔 만끽하러 나가 봐야겠죠. 서울 곳곳 여유롭게 산책하고 나서 바로 맛볼 수 있는 맛집을 알려 드릴게요.

■서울숲-할머니의 레시피
서울숲은 뚝섬을 재개발하면서 만들어진 시민의 숲으로 약 116㏊의 거대한 공간을 숲으로 꾸미고 그 안에 여러 개의 테마를 가진 공원을 만들었답니다.

서울숲 공원의 가을 풍경은 그 어느 계절보다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노란 은행나무길, 붉게 물든 대왕참나무 단풍길, 물과 갈대가 어우러진 습지생태원의 풍경은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죠.

이렇게 예쁜 풍광을 보며 마음의 헛헛함을 채우고 나면 위장의 헛헛함도 채우러 가야겠죠. 정갈한 한식 반상을 맛볼 수 있는 성수동 ‘할머니의 레시피’의 비밀을 캐보러 가봐요. 쌈밥정식·비빔밥정식·떡갈비 정식 등 메인요리를 택하면 생선구이 등 반찬과 함께 한상 차림으로 서빙이 돼요. 밑반찬들은 자주 바뀌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식사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입니다.

소의 갈비뼈 끝에 붙어 있는 숨뼈를 사용해 사골 국물을 내고 양지·사태 등 살코기와 토란·고사리 등을 넣어 끓인 ‘숨뼈국’도 이 집만의 시그니처 메뉴랍니다. 식당 이름처럼 할머니의 걸쭉한 내공까지 느껴지지는 않지만 정갈한 차림새와 깔끔한 맛이 포인트이니 참고하세요. 혼밥하기에도 제격.
■올림픽공원-개군할머니토종순대국
황화코스모스의 주황물결, 핑크뮬리의 핑크핑크함, 댑싸리 억새의 낭만까지…. 다양한 야생화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곳이 바로 ‘올림픽공원’입니다. 송파구가 운영하는 벼체험 공간에서는 황금빛으로 물든 벼와 허수아비도 있어서 이런 풍경이 낯선 아이들에게 체험학습으로도 좋을 듯해요.

생각보다 큰 규모의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면 허기가 지기 마련이죠. 양평에서 3대째 40여 년간 명성을 떨치고 있는 ‘개군할머니토종순대국’이 방이동에 분점을 냈다는 소식에 찾아가 봤죠.

올림픽공원 남2문으로 나와 큰 길에서 한 블록만 걸어 들어가면 찾을 수 있는 식당에는 순댓국과 순대전골 등 단출한 메뉴판에서부터 신뢰를 부르는데, 고춧가루만 빼고 모든 식재료가 국내산이라 더 믿음직합니다.

메뉴를 주문하면 겉절이와 알맞게 익어 새콤한 깍두기와 함께 돼지간 몇 점이 기본 찬으로 나와요. 보글보글 끓는 채로 서빙된 순댓국에 부추를 한 줌 넣고 살짝 식인 후 국물을 한 숟가락 맛보면 뽀얀 색깔에서 예상되는 것과는 달리 아주 담백함을 느낄 수 있죠.

3분의 1쯤 먹다가 다진 고추와 다데기를 적당히 풀어서 먹으면 칼칼한 그 맛이 위장 속까지 데워주죠. 순대도 당면이 대부분인 여타 식당의 것과는 달리 선지와 야채들로 꽉꽉 채워져 있어 ‘엄지 척’을 부릅니다. 특히 이 집 순댓국의 매력 포인트는 시래기인데요. 잘 삶아져서 부들부들한 식감이 참 좋더라고요.
■홍릉숲-경발원
서울에서 등산을 하지 않고도 단풍구경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홍릉숲’입니다. 이곳은 청량리동에 있는 한국 최초의 수목원으로 매년 단풍달력이 발표될 정도로 10월 초부터 11월 중순까지 다양한 종의 단풍들이 물드는 것을 감상할 수 있는데, 10월 말이 절정이라고 하니 늦기 전에 찾아가 보세요.

홍릉숲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발원’은 휘경동 ‘4대 천황’으로 꼽힐 만큼 경희대나 한국외국어대 학생들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인 맛집이랍니다. 회기역 2번 출구 가까이 자리잡고 있는데 매콤한 맛이 일품인 깐풍기와 고춧가루 대신 쥐똥고추가 듬뿍 들어가 칼칼함이 매력인 짬뽕이 특히 인기 메뉴죠.

하지만 사장님 마음에 따라 랜덤으로 문을 열고 닫으시니 출발 전에 꼭 전화로 확인하고 가야만 한다는 것이 팁.

하루 1000개 이상의 만두를 팔고 지방으로 택배까지 보낼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봉이만두도 이 동네 또 다른 4대 천황입니다. 촉촉하고 말랑한 고기만두는 입에 넣고 씹는 순간, 알싸한 부추향이 달큼한 육즙과 만나 감미로운 만두의 향연을 경험하게 해주죠. 최근엔 남양주 별내에도 새 매장을 오픈했다는데 남편 사장님은 별내에, 아내 사장님은 휘경동 본점을 지키고 계신다 하니 참조.
■경의선 숲길-오롯
경의선 숲길은 파주시 문산역 방향의 경의선과 인천공항 및 김포공항 방향의 공항철도가 지하로 복선화되면서 지상에 남겨진 폐철길을 살려 만들어진 공원인데요. 그 길이가 홍제천(경의선 가좌역 부근)에서부터 용산문화체육센터(경의선·6호선 효창공원역)까지 총 6.3㎞에 이릅니다. 구간구간마다 다른 매력을 느끼면서 쭉 걷다 보면 1일 1만보 걷기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주바리도 서식지 근처라 자주 애용하는데 산책을 하다 발견한 맛집이 바로 대흥역 근처의 분위기 좋고 맛도 좋은 이자카야 공덕 ‘오롯’입니다.

저녁엔 모둠사시미·모츠나베·마구로육회 등 술안주들이 준비돼 있고, 점심 메뉴로는 카이센동·스테키동·츠케동 등 일본식 덮밥류가 맛있어서 오히려 낮에 자주 가게 되더라고요. 음식 색깔이나 차림새도 예뻐서 ‘인별 갬성샷’으로도 아주 훌륭해요. 사시미들은 보기만 해도 신선함이 느껴지고요.

따뜻한 국물의  우동도 요즘 같은 계절엔 더욱 입맛을 끌죠. 숲길 방향으로 난 폴딩도어를 활짝 열면 무르익은 가을의 정취를 온몸으로 흠뻑 느낄 수 있어 더욱 좋아요. 특히 대흥역 구간이나 연남동 구간은 길 양쪽으로 맛집과 분위기 좋은 카페가 즐비해서 데이트 코스로도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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